[가상] 두자 13. 래커 2007/10/29 10:55 by zizim
미술숙제로 조금 쓰고는 까맣게 잊고 서랍 속에 잠재운 래커에 대해 말해보라 한들, 무슨 생각으로 이 소재를 채택했을까 의아할 뿐이다. 환기를 꼭 하라는 선생과 포장지의 주의사항에 아이다운 반항심이 올라와서 창문을 닫은 채로 래커칠하다가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데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든지, 뿅 간다는 말에 넘어가 병 입구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 맡았더니 어지럽기만 하고 속만 울렁거렸다는 얘기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냄새를 오래 맡으면 뇌세포가 파괴되어 멍청해진다는 말을 네이버 지식인에서 주워듣고 래커를 성적표의 핑곗거리로 삼았다가, 학생용 미술재료는 안전성을 최대한 고려해 생산되며 지식인엔 허위·과장정보가 흔하니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학교측 답변 때문에 매를 두 배로 벌었다는 억지 이야기라도 짜내란 말인가. 굳이 냄새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의 기능은 발색, 광택, 방수니까. 수채물감을 칠해놓은 지점토 꽃병에 마무리로 래커칠하는 순간 빛바랜 색조가 진하고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모습이 꼭 마술 같아서, 할머니 백발에도 칠하려다 맵싸하니 혼났다는 이야기 정도면 되려나. 매끈매끈한 표면을 수십 번, 질리지도 않고 매만지다가 작품을 깨뜨렸다는 허무결말은 어떨까.
시험삼아 종이에 발랐더니 광택은 없고 누렇게 변해버렸다든지. 그도 아니면 래커를 1인칭으로 내세워 볼까. "당신이 부르는 대로 뭐든 들어드리겠으나 진심만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 주지도, 출신 및 과거행적과 맞바꾸지도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껍질인 제겐 진심이랄 게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은 빈틈 하나 없이 반들반들하기만 하니, 부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시죠." 감상적이고 겉멋 들린 대사. 여튼 결론은 딱히 들려줄 만한 래커 얘기가 없다는 것.
냄새를 오래 맡으면 뇌세포가 파괴되어 멍청해진다는 말을 네이버 지식인에서 주워듣고 래커를 성적표의 핑곗거리로 삼았다가, 학생용 미술재료는 안전성을 최대한 고려해 생산되며 지식인엔 허위·과장정보가 흔하니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학교측 답변 때문에 매를 두 배로 벌었다는 억지 이야기라도 짜내란 말인가. 굳이 냄새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의 기능은 발색, 광택, 방수니까. 수채물감을 칠해놓은 지점토 꽃병에 마무리로 래커칠하는 순간 빛바랜 색조가 진하고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모습이 꼭 마술 같아서, 할머니 백발에도 칠하려다 맵싸하니 혼났다는 이야기 정도면 되려나. 매끈매끈한 표면을 수십 번, 질리지도 않고 매만지다가 작품을 깨뜨렸다는 허무결말은 어떨까.
시험삼아 종이에 발랐더니 광택은 없고 누렇게 변해버렸다든지. 그도 아니면 래커를 1인칭으로 내세워 볼까. "당신이 부르는 대로 뭐든 들어드리겠으나 진심만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 주지도, 출신 및 과거행적과 맞바꾸지도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껍질인 제겐 진심이랄 게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은 빈틈 하나 없이 반들반들하기만 하니, 부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시죠." 감상적이고 겉멋 들린 대사. 여튼 결론은 딱히 들려줄 만한 래커 얘기가 없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