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예전 글下 - 타캐러편

[03/09/17 21:32] 그들이 농구를 그만둔다면?

만약 슬램 인물들이 고교 졸업 후 농구를 계속하는 것 이외의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면? 이를테면 농구에 대한 열정이 식는다거나, 농구보다 다른 일에 더욱 소질이 있음을 깨닫거나, 혹은 자신의 실력이 고교농구 밖에서는 통하지 않음에 좌절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불의의 사고를 당해 농구를 계속할 수 없다거나 해서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불과하다.

원작에서 일찌감치 이후 진로가 밝혀진 사람은 능남의 주장 변덕규. 상북과의 시합에서 진 후 은퇴하여 가업을 잇기로 하였으니. 그럼 능남의 차기주장 윤대협은? 단조롭고 반복적인, 틀에 박힌 일보다는, 변화가 있고 흥미와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면 잘해나갈 것이다. 여가시간엔 낚시도 즐기면서 말이다. 그에게 최악의 직업은 공무원이 아닐까?

채치수와 권준호, 두 우등생은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문무겸비가 신조인 치수는 훗날 대학팀에서 농구를 계속하면서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나 농구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는 준호는 좋은 대학에 가겠지만, 농구를 계속할 것 같지는 않다. 그에게 있어 농구란 '나의 길'이란 의미보다는, 친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유도부에서도 탐낼 만큼 운동능력 만빵의 강백호. 그의 능력이 가장 잘 발현된 것은 농구였지만, 농구 이외의 다른 스포츠에서도 그 무한대 체력과 운동신경을 잘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그 자신감, 적응력, 사람들을 대할 때의 솔직하고 허물없는 태도 등 많은 장점들을 살펴볼 때, 어디서 뭘 하든 잘해나갈 것 같다. 무인도에 혼자 남겨져도 살아남을 것 같다.

상양의 선수 겸 감독 김수겸.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동료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감동하고 힘을 내며, 그에 대한 존경심마저 보인다. 키는 작지만 남에게 호감을 살 만한 외모를 갖추고 있고, 리더십이 있으며, 사람을 대하고 다루는 데 능숙하다. 연예인, 교사, 정치가 등, 주로 대중 앞에 나서고 이끄는 직종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

어느 사이트에서 황태산의 끈질긴 성격에는 세일즈맨이 적당하다는 글을 읽었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악착같이 따라붙는 그를 누가 당하리. 노력파 신준섭은 뭘 하든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겠지만, 만일 그가 속한 조직이 능력과(노력도 하나의 큰 능력이다) 노력여하에 따라 공정하게 대가를 주는 곳이 아니라 낙하산과 부정으로 가득한 곳이라면, 그런 모순을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슬램 인물 전원은 아니지만 대강 몇몇을 대상으로 망상을 펼쳐 보았는데, 도저히 망상을 펼칠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서태웅과 정대만이다. 산왕의 정우성을 왜 빼먹느냐고? 아버지의 회상에 나오는 '아기 때부터 농구공을 갖고 노는 모습'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아주 어려서부터 한 가지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그것이 강요든 기대든 자발적인 열정이든, 마음속에서 정반대로 달려가는 압력에 의해 자칫 부서질 수 있다.

주위의 일에 무관심한 편이고, 취미가 잠자기라 잠을 깨우는 사람은 선생이라도 용납하지 않는 서태웅, 농구할 때만은 졸지 않는다. 내성적인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항상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가, 농구를 할 때, 강한 상대와 부딪칠 때만큼은 눈이 이글거린다. 여담이지만, 그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직장생활이란 것엔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업무 중에 졸거나, 무뚝뚝함과 초연함으로 조직에서 고립될지도.

영광과 좌절, 복귀와 부활이라는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이력을 거쳐온 대만군. 부상으로 병실에 있었을 때 몸이 근질거려 다 낫지도 않았는데 공을 들고 빠져나갔던 녀석. 더 이상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자포자기했던 2년간의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공허해진 껍데기와 같았다. 그는 농구를 아주 좋아했고, 아주 미워해보기도 했다. 2년이나 걸려 먼 길을 돌아 힘겹게 되찾은 것을 그는 다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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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zim | 2005/11/30 09:30 | trackback 0 |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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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tus 2006/06/11 15:16  a  x  reply

    아아...정말 멋진 글이에요..이렇게까지 예리하고 자세한 분석, 분명 슬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어 가능한 것이겠죠..ㅠㅠ 슬램덩크...정말 전...이 만화, 최고의 만화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다, 흥미롭다, 이런 걸 떠나서 캐릭터 하나하나 모두 사랑스럽고....저도 정대만 정말 좋아했는데, 정대만의 3점슛 장면은 언제나 멋졌지만, 능남전의 권준호선배의 슛은...뭐랄까...감동, 그 자체였던 기억이에요.

    • zizim 2006/06/11 23:07 a  x

      예리한 분석이라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슬램덩크 매니아 사이트의 칼럼글 및 슬람단구 뉘우쓰의 글들에 비하면 두리뭉실한 잡담(;)입죠;; 호평 감사합니다^^(수줍~) 슬램돌이(슬램덩크 캐릭터)들은 모두들 뜨겁고 생생하고 사랑스럽죠. 능남전에서 안경선배의 슛은 현란하진 않지만 역시 가슴 뭉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