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초한지 강의
![]() | 초한지 강의 이중텐/강주형 역/에버리치홀딩스/2007 |
원제는 "한대풍운인물"로, 샤먼대학 이중텐(易中天) 교수가 CCTV의 학술교양프로그램 '백가강단'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해 엮은 책. 유방, 항우, 한신, 장량, 소하, 조참, 진평, 여치 등 초한지 주요인물의 인물평에 덧붙여 전한시대 조조(삼국지 조조 말고 딴 사람), 원앙, 두영의 인물평도 취급한다.
한신에 대해서는 무려 4챕터에 걸쳐 논하는데 내용이 어째 낯익다 싶더니 지난번 중웹 한신글 요약발췌에서 언급한 바로 그 내용이었다. 어차피 그땐 무료번역기의 발번역에 의존해 보느라 한신이 유방을 배반하지 않은 이유와 출신의 비밀 정도밖에 못 봤었지만. 한신이 괴통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옛 중국문화에서 음식과 옷을 나눠주는 행위의 중대성과 자신의 불우한 과거 때문이라는데,
만약 옷을 남에게 빌려준다면 이는 몸을 서로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중략) 옷을 함께 입는 것은 깊은 정을 뜻합니다. 유방이 옷을 벗어 자신에게 입혀주었으니 한신은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복하여 그를 배반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p22-23)
위 수상한 대목은 전체에서 중요한 대목은 아니고, 치욕을 견디는 인내심과 금의환향 후 불량배에 취한 조치를 칭찬하기도 하지만 중심은 과실비판. 그의 몰락과 허무한 최후에 초점을 맞춰 글을 전개하다 보니 공적보다는 과실에 시선이 향할 수밖에. 도마에 오른 잘못은 역이기를 희생시킨 일과 최악의 타이밍에 가왕 시켜달라고 떼쓴 일, 종리매를 죽게 한 일 등등이다. 특히 종리매 건에 대해서는 ①친구를 판 소인배로 전락한 도덕적 패배, ②유방에 대한 심리적 패배, ③지레 겁먹고 무릎꿇은 전술적 패배라고 꼬집는데 ②와 ③은 다소 겹친다. ②번 심리적 이유는 글쎄, 남의 비위를 맞춘다는 게 꼭 켕기는 구석이 있어서만은 아닐 텐데.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에겐 잘 보이고 싶지 않나?(망상)
'왜 그랬니?'의 애증은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한신비판은, 그렇다고 해서 철저히 공정하지도 않다. 통일 후 한신에 대한 유방의 처사를 무려 '후덕하다'고 칭송하는 등 군데군데 유방빠 기질이 비친다. 딴 사람이었음 죽였을 텐데 유방이라서 놔뒀다는 투의 서술에서 배알이 꼴린다. 유방이 정말 한신이 오래오래 살길 바랬다면 그의 죽음을 듣고 왜 기뻐했겠어. 흥이다! 그리고 모반. 저자는 앞장에서는 한신이 분명히 모반했다고 하면서 정작 학계의 한신무고설에 대한 반박은 없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한신이 모반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간단히 일축함으로써 앞에서 내세운 한신모반 긍정설마저 스스로 무의미하게 만든다. 설마 독자를 무고설에 더 끌리게 하려는 고도의 술수는 아닐 테고.
깔 건 과감히 까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고 한신이 까일 짓 하긴 했지만 순수하게 까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인물 띄우려고 까는 것은 좀 아니올시다. 4챕터에 걸쳐 까면서 하필이면 (상대적)유방 띄우기로 끝맺은 것도 껄끄러운데 소하, 조참 인물평에서도 줄기차게 비교대상으로 끄집어내 까고 있다. 그 둘과 한신의 처세와 말로가 워낙 판이하니 대조해보고 싶을 만하고, 저자는 사마천이 한신에 비해 소하, 조참을 폄하했다는 생각에서 저울균형을 맞추려는 의도였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어차피 두 사람은 나름대로 인정받을 만한 인물들 아니냐는 아쉬움. 그리고 장량편 끝에서 어이상실. 유방의 신하들 중 한신을 제외한 모두가 공수신퇴(功遂身退)를 실천했다고? 비록 유방과 여후가 주원장만큼 심하게 잘라내진 않았다만, 한신 제거는 시작에 불과했잖아.
아무튼 본서의 한신묘사(삽화제외)를 종합하면 뜬금없이 순정물 남주인공이 떠억 나온다. 잘생긴 얼굴에 특출한 능력에 오만방자함. 설마 고도의 한신빠? 그럴 리가 있나, 하하. 전체적으로는 골수 유방빠에 소하, 조참, 장량, 여후에겐 호의적이고 항우, 한신, 진평에겐 가차없다. 재밌게도 한신은 어리석게 굴었다고 씹히고 진평은 너무 약게 굴었다고 씹힌다. "초한지 강의"이지만 항우 빼고 죄다 한나라 편 인물이라는 점과 유방에 대해서만큼은 온통 칭찬 일색이라는 점(좀 까기도 해야 맛이지 칭찬만 하면 오히려 반감 생기던데)이 아쉬우나 일단 읽히기는 잘 읽힌다. 경어체 문장에서 호오가 갈릴 듯한데 개인적으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어 괜찮았다. 나머지 조조, 원앙, 두영 셋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하며 읽었으므로 설명생략.(무책임)
ps : 유방빠라고는 해도 적룡왕만큼은 아니다. 자식들을 수레에서 내던진 사건이 적룡왕에서는 자식보다 부하를 걱정하는 면모로 승화(!)된데 비해 여기서는 상황의 다급함과 유방의 냉혹함을 인정한다. 하기사 하나는 픽션이고 다른 하나는 논픽션이니 동일비교는 곤란하다만.
by zizim | 2007/06/05 18:09 | trackback 0 | comment 6


'몸을 서로 허락한'...OTL 저도 순수한 마음으로 읽고 있었어요! 세상이 나쁜 겁니다!(뭐래)
그렇고 말고요! 결코 우리 눈이 썩은 게 아닙니다.(당당)
아무래도 강연 내용이다보니 경어체이겠네요. 그리고 그쪽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황제니까..^^ 띄워야 되지 않을까요?
띄우는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저 유방까 아님), 위에서 언급했듯 띄우'기만 하'는 게 거슬리는 겁니다.(같은 말 다시 하기) 반대로 까'기만 하'는 것도 싫어요.
몸을 서로 허락한... ^0^
문득 중국에서는 유방을 띄우기 위해 한신을 까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음모였군요.
그러게요,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나요. 아무튼 밑줄친 구절은 느므 좋았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