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만약에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신의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망(太公望) 등의 공훈에 비할 수 있었을 것이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위 구절에서 강렬한 애증이 느껴져서 읽다가 얼굴이 빨개졌다. 완전히 왜 그랬니? 왜 그랬어!잖아, 이거. 밑줄 구절은 '일을 저지르려거든 아직 천하대세가 판가름나지 않았을 때 저지를 것이지 왜 뒷북쳐서 자멸했냐!'라는 탄식으로 읽힌다. 표면적으로는 겸양의 부족을 파멸의 원인으로 들었으나, 교만한 면(번쾌와 같은 반열 운운)보다는 결단력 부족 및 인간과 권력의 속성에 밝지 못한 순진함을 더욱 부각한다. 특히 괴통의 계책을 거절하는 대목이 다른 어느 대목보다도 분량이 길고 묘사도 더 생생하다. 어쩌면 사마천 개인적으로는 그 대목을 서술하면서 '내가 당신이었다면 받아들였겠다, 이 답답한 사람아.'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괴통은 유방을 너무 믿어선 안 되며 지금이야말로 정치적 결단의 시기임을 수차례 일장연설로 강조하지만, 한신은 자타를 과신했기에 거절하고 만다. 자신을 과신했다 함은 뛰어난 재능과 높은 공이 치세에는 주변은 물론 주군에게도 불안과 시기심을 유발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만한 공을 세운 나를 설마 어찌하겠나?'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졌음이며, 타인을 과신했다 함은 유방과의 관계를 돈독한 신뢰관계로 믿었음이다. 그랬기에 후일 유방의 태도가 변하자 상심도 컸던 것이다. 인간심리에, 특히 권력자와 그 주변의 생리에 조금만 밝았다면 뒷북칠 정도로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으려나.

한신은 모반죄로 죽었지만 모반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배효미님의 한신의 죽음에 대한 다른 견해에 따르면 모반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마천이 그의 억울함을 알고서도 검열이 두려워 대놓고는 못 쓰고 일부러 허술하게 썼다고 추측한다는데, 그런 가정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앞의 '위표·팽월열전'의 서술도 간접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정작 거기엔 [여후는 곧 팽월의 사인을 시켜 팽월이 다시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말하도록 했다.]라고, 즉 여후가 팽월에게 누명 씌웠다고 떳떳이 적혀있다. 팽월의 죽음에 대해서는 대놓고 쓰면서 한신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썼다면 모순이다. (그나저나 한신도 딱하지만 팽월 진짜 안습이다. 여후에게 울면서 무죄를 호소해도 죽임당해 젓갈이 되다니.)

개인적으로 미심쩍은 부분은 한신의 모반'계획'인데 그 방식이 정말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치졸하고 허술하다. 중대한 기밀을 가신의 동생이 엿듣게끔 허술하게 취급했다는 점도 어불성설이고. 이런 점에서 누명의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러나 다년간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서 머리가 전처럼 쌩쌩하게 돌아가지 않았기에 기껏 짜낸 계획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는 씁쓸한 추측도 가능하다. 진실은 저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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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zim | 2007/03/30 14:26 | trackback 0 | comment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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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kongchi 2007/03/30 15:41  a  x  reply

    모반죄로 죽었고 제사도 못 받았지만, 이렇게 팬이 많은 걸 보면(찌짐님 포함) 뭐 부러운 인생이죠 ㅎㅎ

    • zizim 2007/03/30 16:01 a  x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흐흐. 좋아하는 사람은 굉장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인 모양인지, 팬도 많고 안티도 많데요.

  2. 드베리 2007/03/30 17:39  a  x  reply

    팽월 진짜 안습입니다(...) 여후, 이 무서운 여자(덜덜덜) 어린 시절 읽었던 척부인의 이야기는 여린 마음에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더랬습니다OTL

    • zizim 2007/03/30 23:18 a  x

      제게도 척부인 이야기는 엄청 충격이었어요. 그녀야말로 베스트 오브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