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소설 항우와 유방 - 한신 묘사
![]() | 항우와 유방 1 시바 료타로/양억관 역/달궁/2002 | ![]() | 항우와 유방 2 시바 료타로/양억관 역/달궁/2002 | ![]() | 항우와 유방 3 시바 료타로/양억관 역/달궁/2002 |
제목은 항우와 유방인데 엉뚱하게 한신 등장부분만 자꾸 들추고 있음. 아동용 중국사 읽던 시절엔 그냥 제 꾀에 제가 당한 놈으로 보였고 고우영 초한지에는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멀게만 느껴졌는데 본작의 그는 귀엽기 짝이 없다. 아기 같은 눈을 가졌다느니, 어린애 같은 얼굴로 웃는다느니, 티없이 맑은 웃음이라느니, 소년 같은 표정이라느니, 길다란 몸을 반으로 접은 채 잠에 빠져 있었다느니, 현기증 느낄 만치 귀엽게 묘사된다. 이차원 세계의 멋진 남자들에게 잘 반하는 편이지만 귀여움에 잠을 설치는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덕분에 요 며칠 수면시간이 팍 줄었다. 번뇌망상의 구렁텅이.
이것이 작가의 편애인지 다른 인물들 묘사도 만만찮은지는 한신 등장부분뿐만 아니라 전체를 읽어야 알 테니 판단보류. 이런 묘사에 거부감을 느낄 남성독자들 많으리라 본다. 인물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수단이 꼭 귀엽고 순수한 이미지밖에 없느냐는 의문도 충분히 가질 법하다. 그러나 한신의 소년스런 면은 궁극적으로 그의 치명적 결함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단지 편애로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군사적 재능은 뛰어나나 다른 면에선 어린애 수준인 '서투른 천재'임을 나타내는 장치다. 작중 한신에 대한 장이의 평(어린애 같은 마음을 가진 천재)이나 괴통의 평(참새 몸에 천산을 오가는 독수리의 날개가 붙은 격)에서 작가의 한신관을 엿봄직하다. 자기 재능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지극히 순수한 욕구로 움직이는 그는 전장은 잘 읽지만 사람 마음을 파악하는 덴 서툴러서,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주군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자기 입지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엔 관심이 없다. 좋게 말하면 솔직함과 순수함, 냉정하게 말하면 처세술 및 정치감각의 결여가 결국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그럼에도 한신에 대한 묘사를 종합하면 작가는 그에게 객관적인 척하지만 결국 호의적이어서 고도의 빠가 아닌가 의심된다. 하기사 시바 료타로 영감님은 다른 작품인 "타올라라 검"에서도 주인공 히지카타의 결점을 탁 까놓고 드러내면서도 그 결점마저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마법 같은 서술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팬을 낚았다. 사람 낚는 어부 같으니. 작가 자신이 한 분야에선 재능이나 의지가 특출하나 다른 분야에선 서투른 인간형에 애정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게 아닐까 멋대로 추측해본다. 여성독자 입장에선 그런 류의 남자는 모성애를 심히 자극한다. 항우의 사자가 고향 얘기를 꺼내자 죽은 모친 생각에 눈물 흘리다니, 괴통이 유방으로부터의 자립을 권하자 식인지식자사인지사(남의 음식을 얻어먹었으면 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라는 격언을 꺼내며 저어하는 그라니, 아놔 너무 순수하잖아. 그런 그에게 매료당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그는 장군에게 필요한 인강(仁强)이라는 미덕을 갖추고 있었다. 그 난공사 속에서 병사들과 한신 사이에 긴밀한 애정이 생겨, 병사들은 한신 장군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슴을 두근거렸다.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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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생은 한신이 좋았다. "그 차가운 꺽다리 놈이" 하고 말할 때의 역생의 어투에는 애정이 가득하였다.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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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이 문제가 아니야. 귀족 출신이라도 질이 나쁜 놈도 많아. 한신은 천성적으로 뛰어난 기품을 가지고 있어." / "폐하." 하후영은 속으로 외쳤다. '유방 당신은 도대체 그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칭찬을 하고 있는 건가!' (3: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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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통은 그런 한신이 좋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인으로서 걸출한 재능을 가졌으나 다른 면에서는 백치와도 같은 인물치고 제대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3:168)
이런 마성의 남자 같으니라구. 절대 낚이지 않을 테다! (이미 낚였으면서 이제 와서 시치미는?)
by zizim | 2007/03/02 15:52 | trackback 0 | comment 8




하긴 시바 료타로 영감님은 울나라의 광해군도 꽤 좋아라 하셨대죠..역시 의지가 뛰어나나 다른 분야에선 심히 서투른 인간형..
오오, 영감님이 광해군도 좋아했군요. 저도 왠지 그런 인간형에 끌려요. 본받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정이 가는~(발그레)
크헉...! 전 고우영님 초한지에서도 한신에게 낚였었단 말입니다, 이런OTL 인용하신 부분들이 정말 장난이 아닌데요, 당장 찾아서 읽어야 겠습니다 ㅜㅠ
헤어나기 어려운 망상유발 문구가 곳곳에 도사리는 위험한(?) 책입니다.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결국 오늘 서점 다녀왔어요. 낚여도 아주 단단히 낚이고...;;
전 옛날에 요코하마 미쓰테루 초한지 읽으면서 한신 너무 애정이 안 가는 인물형이라 생각하고 접어두고 있었는데 고우영 버전은 좀 발리더라고요.....;;; 요코하마 미스테루는 잘난 사람은 진짜 한 치의 틈도 없이 잘나게 그려서 되려 정이 떨어진달까요. 근데 시바 료타로 영감은 또 어떻게 처자들을 낚으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사람에 대한 이분의 묘사는 정말 뭐랄까...여성적이랄까...남자의 글쓰기가 저렇게 된다는 게 신기해요.
요코야마 미쓰테루 초한지는 아직 안 봤지만 거기의 한신은 정떨어지게 완벽한 모양이네요. 사람이 너무 완벽해도 재미가 없죠. :P 고우영 버전 다시 들춰보니까 순수했던 어린 시절엔 안 보였던 부분들이 자꾸 보여서 므흣합니다. 영감님 버전에서는 전략가로서의 재능과 의외의 순진함(텐넨?) 사이의 갭이 나름 사랑스러워요(콩깍지).
아뇨. 묘사는 별로 나오지 않죠. 그저 기존에 알고 있던 진시황에 대한 묘사가 아니었기에 흥미를 느꼈었다는 것입니다.^^
묘사가 재밌었다고 하시길래 재밌는 묘사가 많이 나오는 줄 알았죠. 그러니까 인물해석이 참신했단 말씀이시군요. 그리고 댓글에 대한 댓글(댓댓글)은 'REPLY'를 클릭해 다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