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어려울 때, 복잡다단한 상념들을 단순 명쾌하게 표현할 한마디를 좀처럼 찾지 못할 때, 문득 사고복사기가 있었으면 하는 망상을 한다. 생각을 복사해 정리해주었음 하는 대책 없는 귀차니즘. 만화가들도 간혹 그런 망상을 하는 모양인지, 어릴 적 친척집에서 본 이진주씨 만화엔 만화가의 머릿속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출력장치가 있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프로건 아마추어건 쟁이임을 자처하는 사람치고 비슷한 상상 한번쯤 해보지 않은 이 없으리라. 정말로 사고복사기가 생긴다면 창작의 고통이니 산고니 하는 소린 죄다 태고적 얘기가 되려나? 너도나도 시집과 소설책을 내놓아 소위 그들만의 리그가 사라지려나? 엘리티즘에 젖은 일부는 자신들이 내려보던 범속인보다 삶과 사람에 대한 식견이 모자람을 알고 절망하려나? 복사기에도 은밀한 검열과 조작의 손길이 뻗으려나? 최악의 예상결과는 사고력 자체의 쇠퇴다. 생각을 끄집어내기가 늘 쉽고 즐겁지만은 않고 오히려 힘들게 끙끙댈 때가 더 많지만, 그런 고통은 표현력뿐만 아니라 사고력도 키운다. 모든 미덕이 그렇듯 사고력도 그냥 키워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힘을 들일 때 자란다. 표현과 사고는 기실 한몸이라, 끙끙대며 쓰다보면 그렇게 쓰기 전에는(막연히 공상만 할 적에는)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점들을 새롭게 발견한다. 고민과 불안으로 번잡할 때 그런 마음을 종이에 옮기거나 누군가에게 말하다 보면 저절로 실마리가 보이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말하고 쓰기가 귀찮다는 말은 생각하기 귀찮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 사고복사기의 간편함에 물들어 표현활동을 게을리하면 사고도 게을러진다. 생각하는 동물이 생각을 멈추면 그걸로 끝이다. 뭐, 어차피 사고복사기가 없어도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은 꽤 있지만 말이다. 미디어와 전문가의 권위를 한치도 의심하지 않고 입버릇처럼 '누가 그러던데~', '누구누구에 의하면~'을 뇌까리는 사람들. 그러는 너는 예외인 줄 아니? (삼천포) 표현의 고통은 성장통이다. 그러나 통증이 지나쳐 다른 일에도 영향을 준다면 복사기 망상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단 부족한 부분을 검토하는 게 좋겠다. 글쓰기 방식을 약간 수정한다든지, 직간접경험을 재충전한다든지, 뇌내의 가혹한 내부비판자를 길들인다든지. 내 성격엔 셋째가 가장 힘들군. 이놈의 완벽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