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 우울한 스노브의 초상
드라마와 대중가요에 대한 노골적 혐오, 하루키와 에쿠니 예찬, 주류에 대한 반감과 비주류 취향에의 자부심, 세상 사람들은 너무 평범하고 따분해서 자신의 독특함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고상한 소외감, 부모와 학교와 사회에 대한 냉소, 과거의 슬픈 사건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확대해석하는 상처 후비기, 때론 너무 관념적이고 때론 너무 감상적인 (자기만 알아먹는) 겉멋 든 독백. 그는 웹상에 널리고 널린 우울한 스노브의 조건을 빠짐없이 갖췄다.
카페 회원들은 처음엔 그의 넋두리에 관대했다. 동류들은 맞아요 나도 그래요 맞장구치기 바빴고 나머지 사람들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는 겸손함으로 흔쾌히 넋두리를 묵인했다. 하여 그의 넋두리는 횟수와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남의 경사에 삐딱한 댓글로 초를 치곤 했다. 생일글에 축하댓글이 주르륵 달리자 "좋겠네요. 전 남들 다 받는 생일축하 한번 못 받아봤는데~"라는 식으로 재를 뿌리는데 누가 반길쏘냐. 사람들은 슬슬 짜증이 나서 그의 글에 훈계나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마침내 그가 여기 분들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고 투덜대자 회원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안방드라마 무시하고 미드일드 본다고 더 고상한 줄 아느냐, 당신이 좋아하는 건 내용물 자체가 아니라 비주류라는 라벨일 뿐이다, 무슨 밴드가 왜 뜨지 않느냐고 불평하지만 정작 오버로 뜨면 변절했다고 욕할 인간 주제에, 세상이 따분하다 말하기 전에 치열하게 살아는 봤나, 사람들이 얄팍하다 말하기 전에 깊이 사귀어는 봤나, 세상 특히 웹세상은 말이지 난 독특해 평범은 딱 질색이야 뇌까리는 평범한 철부지로 넘실댄다네, 당신을 괴롭히는 건 과거 자체가 아니라 그 과거를 무한 반복재생하는 매저키스트 당신이라고, 세상엔 당신보다 더한 일을 겪고도 웃으며 당차게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통 역치가 낮음은 자랑거리가 아냐, 그렇다고 쿨한 척은 더욱 꼴불견, 사람이 싫다 혼자서도 잘 논다는 말은 외로워 죽겠다는 비명으로밖에 안 들려, 그리고 넋두리는 일기장에서나 해, 광장에 싸지르면 노상방뇨야 알어? 다들 당신 넋두리 들어주는 데 질렸다고, 이젠 당신 닉네임만 봐도 기분이 우중충해지고 속이 울렁거려, 가만히 닥치고 구경만 하든지 아님 나가줬음 좋겠어.
모두가 그렇게 퍼부어대고 처음엔 그에게 맞장구쳤던 동류들도 은근히 대세를 따라 사실 당신이 좀 지나치긴 했다고 껴드는데, 유일하게 그의 편을 드는 이가 있었으니 회원간 분쟁시 늘 말리는 역을 자청하던 이였다. 선처를 호소하는 조심스런 목소리가 헛되게도 그는 모든 넋두리를 지우고 장렬히 산화, 아니, 탈퇴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정팅 때 그의 얘기가 도마에 올랐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느니, 사라져서 시원하다느니, 차분히 말해도 알아들었을 텐데 너무 몰아세웠다느니, 그런 인간에겐 험하게 말해줘야 알아듣는다느니, 간 사람 얘기는 관두자는데 자타공인 중재자가 불쑥 껴들었다.
"그 사람 다른 카페에서 같은 넋두리를 반복하며 활동하더군요. 그 성격에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오지랖도 넓으셔. 그런 인간 목숨까지 걱정하시고."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이 우리 카페에서 따돌림당했다고 유서에 거짓말이라도 쓰면 우리 카페가 언론과 네티즌의 껌이 되잖습니까. 어디까지나 우리 카페를 걱정한 겁니다."
Tag | 단문,
스노비즘
카페 회원들은 처음엔 그의 넋두리에 관대했다. 동류들은 맞아요 나도 그래요 맞장구치기 바빴고 나머지 사람들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는 겸손함으로 흔쾌히 넋두리를 묵인했다. 하여 그의 넋두리는 횟수와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남의 경사에 삐딱한 댓글로 초를 치곤 했다. 생일글에 축하댓글이 주르륵 달리자 "좋겠네요. 전 남들 다 받는 생일축하 한번 못 받아봤는데~"라는 식으로 재를 뿌리는데 누가 반길쏘냐. 사람들은 슬슬 짜증이 나서 그의 글에 훈계나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마침내 그가 여기 분들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고 투덜대자 회원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안방드라마 무시하고 미드일드 본다고 더 고상한 줄 아느냐, 당신이 좋아하는 건 내용물 자체가 아니라 비주류라는 라벨일 뿐이다, 무슨 밴드가 왜 뜨지 않느냐고 불평하지만 정작 오버로 뜨면 변절했다고 욕할 인간 주제에, 세상이 따분하다 말하기 전에 치열하게 살아는 봤나, 사람들이 얄팍하다 말하기 전에 깊이 사귀어는 봤나, 세상 특히 웹세상은 말이지 난 독특해 평범은 딱 질색이야 뇌까리는 평범한 철부지로 넘실댄다네, 당신을 괴롭히는 건 과거 자체가 아니라 그 과거를 무한 반복재생하는 매저키스트 당신이라고, 세상엔 당신보다 더한 일을 겪고도 웃으며 당차게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통 역치가 낮음은 자랑거리가 아냐, 그렇다고 쿨한 척은 더욱 꼴불견, 사람이 싫다 혼자서도 잘 논다는 말은 외로워 죽겠다는 비명으로밖에 안 들려, 그리고 넋두리는 일기장에서나 해, 광장에 싸지르면 노상방뇨야 알어? 다들 당신 넋두리 들어주는 데 질렸다고, 이젠 당신 닉네임만 봐도 기분이 우중충해지고 속이 울렁거려, 가만히 닥치고 구경만 하든지 아님 나가줬음 좋겠어.
모두가 그렇게 퍼부어대고 처음엔 그에게 맞장구쳤던 동류들도 은근히 대세를 따라 사실 당신이 좀 지나치긴 했다고 껴드는데, 유일하게 그의 편을 드는 이가 있었으니 회원간 분쟁시 늘 말리는 역을 자청하던 이였다. 선처를 호소하는 조심스런 목소리가 헛되게도 그는 모든 넋두리를 지우고 장렬히 산화, 아니, 탈퇴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정팅 때 그의 얘기가 도마에 올랐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느니, 사라져서 시원하다느니, 차분히 말해도 알아들었을 텐데 너무 몰아세웠다느니, 그런 인간에겐 험하게 말해줘야 알아듣는다느니, 간 사람 얘기는 관두자는데 자타공인 중재자가 불쑥 껴들었다.
"그 사람 다른 카페에서 같은 넋두리를 반복하며 활동하더군요. 그 성격에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오지랖도 넓으셔. 그런 인간 목숨까지 걱정하시고."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이 우리 카페에서 따돌림당했다고 유서에 거짓말이라도 쓰면 우리 카페가 언론과 네티즌의 껌이 되잖습니까. 어디까지나 우리 카페를 걱정한 겁니다."
by zizim | 2006/11/24 16:09 | trackback 0 | comment 12

웹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케이스를 꽤나 많이 봣네요.
공감이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한때 치기라면 모를까 나잇살 먹어도 저러면 참 안타깝죠.
저도 공감 많이 느끼게 되네요.
제 자신부터 찬찬히 돌아봐야겠어요.
물론 가을귀님 포함 이웃분들껜 해당되지 않는 글이에요. 공감하셨다니 기쁘네요.
여러 가지 의미로 저런 사람 인생 참 안쓰러워요. 이런 일화를 접하거나 직접 마주대할 때마다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항상 생각합니다...-_-
자타공인 중재자님은 선견지명이 있으시군요(웃음).
삽질할 에너지로 산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그 자신도 불행하지만 주위 사람이 더 힘들어요. 친구도 가족도 다 떨어져 나가야 비로소 정신 차리려나 싶기도 하고. 저런 사람들에게 [고독주의, 응석쟁이 사이에서 대인기], [맛있고 없고의 기준은 숨어서 읽던 주간지]라고 비아냥대는 범프의 '렘'을 들려주고파요.
세상엔 자기 힘들고 고달픈 얘기조차 못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주제에 미드일드 꼬박꼬박 챙겨보고 인터넷 저렇게 싸돌아다니면서 신세한탈할 정도라면 먹고 살기는 편한가보군요. 거참, 저런 사람들 보면 나중에 꼭 술 마시고 와서 한소리 하더군요. '거지같은 세상,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이죠.
배가 부르고 시간이 남아도는 주제에 관심이 고파서(?) 그러는 거죠 뭐~;; 어쩌다가 가끔 고민을 토로하는 수준이라면 괜찮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줄창 불평불만 냉소만 일삼는 사람들은 모니터 집어던지고 햇볕 아래서 땀 좀 흘려봐야 정신 차리려나요.(笑)
그 말리던분, 정말 생각이 깊은 분 같네요.. 후후. 정말 웹상에서 생활하면서 이런사람, 저런사람 많이 보는데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_-
그가 걱정한 건 탈퇴한 사람이 아니라 카페의 평화였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
정말로 상처받은 사람은 '난 상처받았어' 라고 말하지 않아요.아무 상처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행동을 보이지.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고,사실 자기가 상처받은 거 알고 있으면서 인정하기 싫어서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것뿐이에요.
제가 그랬어요.이유 없이 튀어나오는 자기비하에 주말이면 FPS게임(서든이나 뭐 그런 총으로 사람 쏴 죽이는 게임)에 쩔어 살고,남들한테 절대 먼저 인사 안하고,고마워하다가도 그러면 안 된다고 자책하고 미안해하다가도 그러면 안 된다고 자책하고.
왜 그러냐고 친구가 미친 듯이 추궁해서 한참 후에야 나한테 트라우마가 있었고,나도 그걸 알면서 부인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저런 스노브들은 사실 상처를 한 번도 안 받았기 때문에 저렇게 나오는 거에요.치열한 삶도 살아본 적 없고,얄팍한 사람도 만나본 적 없고,아픈 일도 당해본 적 없고.상상력 하나는 끝내 주네요.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나 죽고 싶다고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네요. 소위 '엄살쟁이'가 남의 경험과 상처는 우습게 보면서 자신의 상처는 아무리 작아도 확대해석하고 부모/학교/사회만 탓하며 '섬세하고 연약한 피해자'로서의 자기에 집착하는 반면, 혼자서 감당하기는 너무 버거운 상처거나 혹은 '흔들림없는 자기'에 집착한다면 상처받았음을 부인하려 들겠죠.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지만, 주위에서 안타까움의 손길을 내밀게 되는 쪽은 후자고요. 그나저나 경험담 중 일부는 뜨끔하네요. 여전히 인사성 없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1人...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ㅂ'